도시경제의 진화
도시의 발생, 성장과 발전, 쇠퇴 등에 대한 인문 지리학적 고찰은 결코 경제 지리적 과정 및 결과와 분리시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950년대 중반 경제지리학에서 파생하여 현대적 의미의 도시지리학이 성립했던 역사가 암시하는 것처럼 도시 지리의 문제는 경제 지리의 작용과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둘 사이의 관계는 한 방향의 단선적 관계로 설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포스트메트로폴리스』에서 에드워드 소자(Edward Soja)가 강조한 것처럼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은 사회-공간 변증법적 사고와 분석의 프레임을 통해서 이해되어야 한다(이현재 등, 2019). 같은 맥락에서 레드먼도 도시는 "첫 번째 요인이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등의 순으로 다른 요인을 자극한다는 선형 논리로 이해될 수 없고 상호작용하는 일년의 과정들의 총체로 개념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고(Redman, 1978, 229), 리처드 워커 또한 "도시 지리와 경제지리는 본질적으로 합치"된다고 했던 바가 있다(Barnes and Christophers, 2018, Ch.10). 도시 역사에서 중추적 사건의 중요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기원전 3500년을 전후로 서남아시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알렉산드리아, 하라파, 우르 등의 고대도시가 발생하여 도시혁명이 시작되었던 경제 지리적 근원을 돌이켜보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에서 상술하는 바와 같이, 수렵 채집 경제를 근간으로 연명하며 동부아메리카 지역으로부터 이동하던 고대 인류는 석기시대를 걸치며 자연환경의 조건이 우수한 곳에서 야생식물의 작물화와 야생동물의 가축화에 성공하였다(김진준 역, 2016). 작물화와 가축화로 인한 관리의 문제가 대두함에 따라 정착 생활은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이 되었고, 이런 조건 하에서 관개기술도 발전하게 되어 농업용수의 연중 공급이 가능하게 되었다(Childe, 1950; Wheatley, 1971; Wittfogel, 1957). 그래서 인간은 역사상 처음으로 필요한 식량의 양을 초과한 잉여농산물을 생산하며 농업혁명을 이룩할 수 있었고, 이는 사회적 분업으로 이어져 상인, 수공업자, 기술자, 종교인, 정치인, 행정 관료, 군인 등 비농업적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엘리트 계층이 집중하면서 농민이 거주하는 주변부에 대해 종교정〮치군〮사경〮제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던 고대도시는 수렵채〮집사회에서 농업경제로 전환의 지리적 산물이었다. 도시국가(city-state)로도 칭해지는 그런 형태의 도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제국을 거치며 지중해와 서유럽 지역으로 확산하였지만, 중세시대에는 봉건제도를 기초로 도시와 주변부 간의 착취적인 관계가 고착화되어 도시의 경제적 활력을 약화시키기도 했다. 도시가 교류와 혁신을 자극해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며 착취 기반인 동시에 엘리트 계층 중심의 소비 사회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세 암흑기 봉건도시의 모순을 토대로 상인, 장인 등 신중산층이 성립하여 14~16세기의 르네상스 시대에는 상업도시(mercantile city)가 번성하였다(Pirenne, 2014). 무산농민, 탈주농노, 추방자 등 중세도시 하위계층의 일부는 구습과 구제도의 제약을 탈피하고 원거리 교역에 참여에 참여하며 상공업 및 금융업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르주아 계층으로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무역으로 축적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도시에 다시 정착해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도시의 번영을 추구했다. 도시 내부에서는 장인을 중심으로 길드를 조직하고 노동자를 고용하여 무역 상품을 제조하였으며, 이들은 건설 인부, 창고지기, 경비원 등을 고용해 도시 관리의 중추 세력이 되었다. 그리고 길드를 중심으로 주변부 농부 및 목축업자의 생산품을 도시로 유통시켜 제빵 양〮조정〮육업을 육성했다. 결과적으로, 봉건시대 토지 중심 경제는 화폐경제로 전환되었다고, 성당과 수도원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중세도시의 공간구조는 상업도시 시대에 이르러 시장(marketplace)을 중심으로 재편하였다(Pacione, 2009). 이 당시상인들의 시장 지배력이 높았던 밀라노, 플로렌스, 쾰른, 브뤼즈 등의 도시는 군주로부터 정치적 자치원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역을 바탕으로 세계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도시연합체도 등장했다(Pirenne, 2014).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아말피, 제노바, 베니스는 지중해 무역을 장악했고, 북해와 발트해를 따라서는 브뤼즈, 쾰른, 함부르크, 뤼베크, 그다인스크(단치히), 리가, 노브고로트 등을 포함하는 한자동맹이 결성되기도 했다.
상업자본주의가 끝을 보고 산업자본주의의 시대가 열리며 도시와 경제 간의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보다 더 광범위한 지리적 범위에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산업자본주의는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결과로 형성되었으며, 19세기 동안 서유럽과 북미 지역으로 확산했다. 그리고 20세기에 걸쳐 산업자본주의는 제국주의, 식민주의, 냉전 질서, 신국제분업 등 비대칭적인 중심부-주변부 권력관계 하에서 불균등한 방식으로 공간적 범위를 제 3세계 지역까지 확대하며 산업도시(industrial)를 형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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